시간을 통해 알게 되는 것 - 시간을 달리는 소녀

이어서 [시간을 달리는 소녀(時をかける少女)]입니다.
같이 묶어서 적어보려고 했는데, [초속 5센티미터]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결국 나눌 수 밖에 없게 되네요. --;



작년 일본에서 개봉했던 극장용 애니메이션 가운데 가장 좋은 평을 받았던 작품이었죠.
(덧붙여 최악은 [게드전기])
당시 평은 "잘 만든 청춘영화"라는 것이었고, 일단 이 영화에 대해 관심이 가는 건 그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올해에 한국에서도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헤에, 했죠.
한국에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과연 얼마 팔릴 거라고 생각하고 들어오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동시에 극장에서 하는 거라면 극장에서 봐야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집에 내려갔을 때 동생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만, 자기 친구도 보고 싶어하더라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러다가 갑자기 토요일에 난데없이 그걸 봤다는 문자가 날아오면서 덧붙여져 있는 말.
"친구랑 동시에 감상이 일치했다. 또 보고 싶더라"
어차피 [초속 5센티미터]도 볼 생각이었는데, 그냥 같이 봐버리자.
그렇게 생각하게 실행해 버렸던 겁니다.
원래는 [시간을 달리는 소설] 원작 소설을 읽고 난 후에 볼 예정이었습니다만, 그냥 보는 김에 같이 보는 쪽이 나을 듯 싶어서.
(서점에서 들춰보니 별로 'SF소설스러운' 작품은 아니더군요. 단지 일본에서 '시간여행'에 대한 색다른 묘사로, 이후 '시간여행'을 다루는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 정도)
이쪽은 [초속 5센티미터]보다는 매니아도(...)가 덜해서 꽤 많은 사람들이 볼 거라고 생각했고, 또 상영기간도 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은 것 같더군요.
결국 이번 주엔 CGV에서는 끝인 것 같고.
하지만 [초속 5센티미터]는 그냥 이대로 끝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와는 달리 이쪽은 나중에 다른 곳에서 상영하는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사실 그랬으면 좋겠구요.

"未来で待ってる"
"미래에서 기다릴게"


마코토는 여학생이고, 코스케와 치아키는 같이 야구를 하고 노래방에 가고 장난도 치고 하는 남학생입니다.
별 고민 없는 것처럼 살고 있는 이들의 생활에 서서히 '진로 선택'이라는 고민이 나타나기 시작하던 시절.
일본어로 읽어서 '나이스'가 된다는 7월 13일에 마코토는 '최악의 하루'를 경험하고, 철도건널목에서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는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으로 훌쩍 다시 돌아와버린 거죠.
이때부터 마코토의 '시간여행time leap 라이프'가 시작됩니다.
동생이 먹어버린 푸딩을 다시 먹으러 가고, '최악의 날'이었던 7월 13일의 '운 나빴던 일'들을 전부 처음으로 돌려버리고, 노래방 시간을 연장하고, 용돈이 부족하면 용돈을 받는 날로 다시 돌아가 버리면 되는, 그런 생활.
그러던 중에 코스케는 후배 여학생에게 고백을 받고, 그냥 친구로 생각하던 치아키에게 고백받아버리고.
하지만 그게 어색한 마코토는 열심히 시간을 되돌려 그 고백을 없던 걸로 해버리고.
그러던 마코토에게 이모 - 원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주인공이었다는 - 는 마코토에게 묻습니다.
"네가 시간을 되돌리는 만큼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는 건 아닐까"
그러던 중에 마코토는 서서히 자신의 시간을 되돌리는 생활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지요.
코스케에게 고민하려는 후배 여자애를 돕겠다고 계속 고백을 반복하던 마코토는 결국 그걸 성공시키지만, 대신에 자신이 7월 13일에 당했던 사고를 코스케와 그 후배가 당하게 만들고 맙니다.
그걸 다시 되돌리려고 했던 마코토지만, 이제 더이상 시간을 뛰어넘을 수가 없게 되고...

'타임리프time leap'라는 개념은 이전부터 있었겠지만, 그런 용어는 [타임 리프]에서 처음 나왔던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뭐, 애초에 [타임 리프]가 [시간을 달리는 소녀] 원작 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타임 리프'라는 용어는 거기서 처음 나오는 것처럼 나와서. -_-;a
(거기 와카마츠군이 자기가 이름 붙이는 것처럼 이야기를 했던 걸로 기억해서. -_-;;)
잘 안 쓰이는 용어였지만 이전부터 쓰이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다른 분의 말씀으로는 '시간여행'이라면 다른 시간 안에서 '또다른 자신'을 만나서 '타임 패러독스'가 일어나 버릴 가능성이 있지만, '타임리프'의 경우엔 그런 모순은 없다고 하는군요.
......이쪽 관계 이야기는 아무래도 이해가 안 되어서, 그냥 이 정도만.
어쨌거나 '이모'가 "그건 타임리프야"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런 용어가 실제 했었구나, 라면서 약간 놀랐다는 말입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은 누구나 희망하는 것 중 하나일 겁니다.
잘못 친 시험, 잘못 한 선택.
이런 것들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그때로 되돌아 간다면 그런 선택은 하지 않을 텐데, 하고 말이지요.
(갑자기 생각나는 "쓸데없이 (홈페이지의 소개만) 진지한" 모 18금 게임이 있지만 일단 넘어갑니다. -_-;)
하지만 시간은 절대적이라 - 지금은 고전물리학 내에서만 그렇습니다만 - 되돌릴 수도 없고, 인생을 반복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런 달콤하지만 이루어질 리 없는 상사을 해보는 것이겠지요.
그 상상은 터무니 없이 거창하기도 하고, 우스울 만큼 작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냥 농담처럼 넘어가는 그런 상상들인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면 어디에 쓰게 될 것인가.
이제까지 상상해 왔던 일이, 정말로 일어나게 된다면?
일단은 처음엔 그게 사실인 지 당황하지만, 어느새 거기에 조금씩 익숙하게 될 테지요.
새삼 진지해져서 언제 시간을 되돌려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할까, 로 고민하다가도 다시 별 것도 아닌 일에 시간을 되돌리고.
뭐, 이렇게 되지 않을까요.
마코토는 그런 여학생이었습니다.
누구나 꿈꿔봤을,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얻게 되고나서, 앞으로의 일에 고민하지만, 당장 눈 앞의 현실을 좀더 즐기기 위해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사용하게 되는.
그러다가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일인 지, 자신의 행동으로 누가 어떤 피해를 입을 수도 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는...
이미 늦는 거지요.
그 점은 정해진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걸 알게 되는 순간, 더이상 자신이 그런 능력을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결국,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사람이 살고 있는 '시간'이라는 마찬가지라는 거지요.
어떤 시간을 기억하는 건 자신 뿐일 지라도, 그리고 그게 자신에 의해 바뀌어져 버린 시간이라고 할 지라도, 사람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체험하지 못한 시간이라고 할 지라도, 그 시간은 시간을 뛰어넘는 그 사람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코토는 계속 시간을 되돌려 치아키의 고백-당사자는 전혀 기억할 수 없는-을 없었던 일로 만들어 버린 일을 '시간이 지난 후에' 후회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아직 고백도 하지 않은 후배 여학생의 고백을 그렇게 열심히 도우려고 노력하는 것일 테고.
이건 "난 알고 있지만 너는 모르고 있는 것"과도 닮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코토가 시간을 되돌리면서 알게 된 것은 마코토 자신만이 알고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것이지만, 그건 마코토가 알게 된 수많은 가능성의 몇가지라고 할 수 있을 테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어쨌거나 시간은 절대적이고, 어찌 할 수 없는 게 아닐까요.
아무리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는 것, 이라는 건 분명히 있는 것이니까요.

누군가가 "시간을 구르는 소녀"라고 불렀을 만큼, 이 이야기 안에서 주인공인 마코토는 신나게 구릅니다.
아마 이제까지 주인공 중에서 이렇게 볼품없이 구르는 주인공은 찾아보기 어려울 겁니다.
말 그대로 시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졌으니, 항상 어딘가에서 뛰어내리면서 시간을 이동하고, 그래서 착지할 때마다 구르고.
처음 시간을 뛰어넘어버린 철도건널목 사고에서부터 친구를 위해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리기 위한 언덕길의 달리기까지, 신나게 뛰고 신나게 구르지요.
중반까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도 많더군요.
...저도 확실히 웃었습니다만.
흔히들 "시간을 뛰어넘는다"라는 표현을 쓰지만, 말 그대로 그런 식으로 "뛰어넘어" 버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동시에 그 결과는 "땅에 구르는" 모습이니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게 마코토의 활발한 모습이고, 마코토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그걸 '청춘'이라고 할 지도요.
그렇기에 마코토는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는' 미래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영화 중간에 처음에 마코토가 이모를 찾아갔을 때, 복원 중이던 그림이 아직 걸려있지 않은 박물관의 전시장을 보여줄 때.
그때 치아키가 그걸 바라보다가 지나가던 모습을 본 사람이 있을까요.
전 그걸 보고 "저녀석이 왜 저기에 있나" 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치아키는 그 그림을 꼭 보고 싶어 했던 것 같더군요.
원래 그걸 보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던 것 같으니.
처음에 그 그림이 나왔을 때는 그게 시간여행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림 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 같진 않더군요.
단지, 그 그림이 누군가가 시간여행을 하게 한 동기가 되었다는 것 정도.

이왕이면 이 영화는 역시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혼잡한 교차로의 사람들 사이에서 들리는 치아키의 목소릴 찾는 마코토가 나오는 장면에서, 마코토의 주위를 돌며 들리는 치아키의 목소리는 극장이 아니면 체험하기 힘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안방극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면 마찬가지 체험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すぐ行く! 走って行く!!"
"금방 갈게! 달려 갈게!!"


마지막으로.
[초속 5센티미터]와 같은 날 봤기 때문에 결국 연관시켜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들.
일단은 '하늘'입니다.
애초에 하늘에 큰 비중을 두곤 하는 신카이씨의 작품인 [초속 5센티미터]에서 하늘이 자주 보이는 건 당연한 사실이지만,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도 하늘은 자주 등장합니다.
애초에 포스터부터가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도약하는 마코토의 모습이니까요.
하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다양한 하늘이 나타났던 [초속 5센티미터]와는 조금 다르게 이쪽은 한여름의 새파란 하늘이 자주 보였다는 점일까요.
그야말로 '청춘영화'에 잘 어울릴 정도로 새파랗게 아름다운 하늘이랄까.
그런 점에서 7월 3일은 극장 화면 안에서 하늘을 원없이 볼 수 있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양쪽 모두 만남과 헤어짐을 담고 있었다는 걸 들 수 있겠군요.
[초속 5센티미터]의 타카키는 아카리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지게 되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마코토는 '자신을 좋아하는' 치아키를 만나게 되고 결국 헤어지게 되는, 그런 이야기라고 하면 좀 억지일까요.
차이점이 있다면 [초속 5센티미터]의 타카키는 아카리에 대한 마음을 깨끗이 정리하게 된 반면에,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마코토는 미래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치아키를 향해 계속 달려가고 있을 거라는 걸까요.
결국 만남과 헤어짐, 혹은 또다른 희망에 대한 이야기.

p.s.
감상을 쓸 때마다, 일단 끝맺음을 한 후에 "왜 이야기를 안 썼지"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느낀 건 그 순간 순간에 기록해 두지 않으면 기억에 남진 않는 것 같군요.
그리고 그게 글이 되어 표현되면서 그나마도 쓰지 못하고 남게 되고.
그래서 감상을 쓰고 난 후엔 항상 아쉽습니다.
사실은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 정말 재밌었어!"하는 정도 뿐이면서도.
그 한 마디를 하기 위해서, 남들에게 "맞아!" 혹은 "재밌을 것 같아"라는 한 마디를 듣기 위해서, 길고 긴 글을 쓰게 되는 자신이 어떤 때는 참 우습기도 하고, 어떤 때는 참 대견하기도 합니다.

by 유령 | 2007/07/04 20:18 | 畵像 - Ani/Comic/Movi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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