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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니를 가진 양의 노래, 그리고 근친애

"우리들은... 양의 무리 속에 숨어든 늑대가 아니에요.
송곳니를 가지고 태어난 양일 뿐이죠."

유전적으로 '흡혈충동'을 가진 혈족이 있다.
이러한 성향은 사회적으로 위험시되기 때문에, 이들은 이 사실을 숨겼고 외부에 들키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 흡혈충동이 나타난 사람을 유폐하고 가까운 친척끼리의 혼인을 반복한다.
결국 그 끝에 도달한 것은 혈족의 감소였고, 어느 남매만이 그 혈족의 마지막 생존자가 된다.

이렇게까지만 쓰면 마치 [라스트 모히칸]처럼 굉장히 비장한 이야기의 서두 같지만, 실제로 [양의 노래]는 전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차라리, 단지 '흡혈충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사회와 분리해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어느 남매가 서서히 종말에 이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의 '흡혈충동'은 기본적으로 소수의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고, 평소에는 그걸 억제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것 외에 이들이 일반인과 다른 차이는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이 일반인과 다르며 그 때문에 위험시 될 거라는 사실을 일찍부터 인식하고 스스로를 일반사회에서 분리하려 하고 있었고, 그 결말이 이 남매에 이르러서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양의 노래]에서 이야기하는 '흡혈귀', 정확히는 '유전적으로 흡혈충동을 가진 혈족'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흡혈귀와는 너무나 다르며, 무력하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혈족의 생존을 위해 이들은 자신의 유전자에 대한 사실을 숨기지 않으면 안 된다.
때문에 이들은 "나와 다르다", 아니, "우리와 다르다"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게 되는 사회의 희생자라는 인상 밖에 받지 못한다.

[양의 노래]는 어둡고 무겁다고는 하는데, 글쎄.
굉장히 서정적인 편이라 그리 처절하진 않다.
토우메 케이의 거친 필체와 담담한 화법은, 오히려 이런 이야기를 감정에 휩쓸리지 않게 바라보게 하는 데는 좋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건, 이 사람의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전반적인 특징이겠지만.
근친애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긴 한데, 요즘 그런 건 너무 익숙해서 그런 건지 별로 문제시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단지 [양의 노래] 안에서의 근친애는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라는 나르시즘적 이유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자기 피의 비밀을, 흡혈충동을 밝히고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가족 뿐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하지만 [양의 노래] 안에서 남매가 보이는 근친애적인 모습이 어두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비밀을 공유하는 자' 사이의 편안함이 아니라 가족 안의 또 다른 사람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딸에게서 아내의 모습을 보고, 누나는 동생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이들 간에 직접적인 성관계는 없지만, '피'를 주는 관계에서, '흡혈귀'의 흡혈행위가 성관계를 은유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비슷한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애와 근친애 사이에 있는 건 굉장히 애매한 경계라고 생각한다.
남편과 아내는 가족이지만, 혈연이 아니다.
그렇기에 가족애와 근친애는 동일시되지 않는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 보면 가족애라는 건 굉장히 위태위태한 경계가 아닐까.
둘의 사이가 알고 보니 혈연관계였다는 사실을 알아버리는 순간, 가족애가 근친애로 바뀌어버리는 거니까.
[양의 노래]가 가진 근친애도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든다.
위태롭게 죽음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는 주인공의 감정이라는 건, 하나 밖에 없는 가족에 대한 안타까움일까, 아니면 자신에게 처음 '피'를 준 여자에 대한 성욕일까.
흡혈과 성교sex는 닮아있다고 했다.
뱀파이어의 흡혈행위는 인간의, 살아있는 생물의 교접이 가진 의미를 대다수 내포한다.
생명의 교환과 번식.
이 혈족의 흡혈충동은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다기 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그 욕망을 발산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누구라도 상관없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성적결합을 하길 원하는 것처럼.
주인공은 처음 먹게 된 누이의 피를 통해 그러한 감정을 경험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누이는 주인공을 통해 잃어버린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되살리고 있었던 것 뿐이었고, 그 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통해 잃어버린 아내를 바라본다.
외부인인 의사와 동급생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고 배타적인 벽.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벽은 그들이 사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벽인 동시에, 그들은 사회로부터 지키기 위한 벽이다.
이들의 가족애란, 그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고요히, 하지만 확실히 일그러진 가족애의 모습을, 종말이 예정된 '흡혈충동'을 가진 가족을 통해 그려낸 이야기가 [양의 노래]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의 대신이라고 해도, 나를 사랑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기에 난 당신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양의 노래]의 남매는 결국 이런 생각으로 살고 있었던 게 아닐까.
결국 찾아오게 되는 종말과 그 결말이 결코 희망적이지 않으면서도, 그 결말에는 수긍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역시.
주인공 안에 숨어있던 흡혈충돌의 계기가 된 동급생의 앞에서 주인공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다.
억눌려진 흡혈충동이 다시 어떤 방식으로 터져나올 지도 모른다.
단지 그 동급생은 그런 불안 역시 받아들여 그와 함께 살아갈 것이라 생각할 뿐이다.

근친애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전까지만 해도 '사랑'이라는 걸, '애정'이라는 걸 몇 가지 카테고리로 묶어놓고 그걸 전부 분류해서 구획을 만들고 있었다.
이건 남매간의 사랑을 남녀간의 애정으로 착각하고 있는 거다, 이건 부녀간의 사랑을 남녀간의 애정으로 착각하고 있는 거다, 라는 식으로.
갑자기 그런 게 다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랑이니 하는 건 누가 누군가에게 어떠한 형태라도 정을 주고 받는, 상대에게서 안정감을 얻으려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인간관계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에 따라 변할 뿐이지,
결국 근본적인 건 다 같은 거 아닐까.
그게 규정지어지는 건 단순히 사회적 인식의 틀 안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촌 간에 혼인이 허용된다는 것과 안 되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사랑의 범위가 달라지는데.
성관계라는 것도 눈에 보이는, 체험할 수 있는 '형태'일 뿐인 거지, 거기서 무슨 의미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단지, 성관계 안에 있다고 해도 그 의도는 단지 성적욕구충족에 있을 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뭐, 애초에 성관계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나오는 건지부터가 의심스러운 지금 생각으로는.
단지 성관계에 집착하는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걸 다른 사랑과는 차별화하려는 생각을 했던 거였는데.
실상은 그저 단순히 '성관계'라는 생물학적 욕구충족과 '사랑'이라는 감정은 시작되는 부분이 다르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굉장히 닮은 듯이 보이지만 말이지.

p.s.
"양의 노래(羊のうた)"라는 제목은, 나카하라 츄우야(中原中也)의 [양의 노래(羊の歌)]라는 시에서 따왔다고 한다.
어찌어찌 찾아서 읽어보긴 했는데, 일본 시라서 무슨 말인지 영 이해를 못하겠다는 게 문제. --;;
...번역판은 있는 지 어떤 지도 모르겠고.

p.s.2
최근에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를 보기 시작하면서 토우메 케이 쪽으로 빠지고 있는데.
[양의 노래]나 [모르모트의 시간] 쪽도 좋은 듯.
(사실 토우메 케이의 어둡고 거친 색감으로는 이런 이야기 쪽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환영 박람회]도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정도의 느낌으로 보기 시작했다.
문제는 미친 듯이 느린 연재 속도와, 과연 결말이 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
이 사람, 단편집 빼면 완결을 제대로 낸 건 [양의 노래] 뿐이라고 했던가.

p.s.3
전격문고MAGAZINE 쪽 문제는, 반디 종로점에서 해결.
교보 쪽은 잡지 주문은 인터넷 쪽으로만 가능하고 일단 문의해 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고.
반디 쪽에선 이번달 분은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날에 같이 주문을 하지 못해서 좀 늦을 지도 모르지만, 다음 발간분부터 정기적으로 들여놔 주겠다고 했고.
결국 반디 쪽에 정기구독하는 걸로 결정.
(...애매한 거 많이 들어오는 곳은 역시 뭔가 다르다. -_-;/)
[건슬링거걸] 9권이 교보 들어왔길래 사긴 했는데, 두려워서 차마 아직까지 읽을 수가 없는데...
......안제, 결국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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