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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에 대한 평가

 우선 흥선대원군에 대해 주목할 점은 그가 실각한 이후에도 그에 대한 민중의 지지는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조선 말 정치적 상황의 전환점이 되는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농민전쟁(1894)에서 그가 정치적 명분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때 등장한 정치세력은 조선시대 전반의 기존 정치세력이라 할 수 있는 유림세력, 현실개혁을 요구하는 구군인과 서울 내에 거주하는 빈민층, 개화정책을 통해 부국강병을 시도하는 개화세력, 기존 봉건질서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고 반외세적인 성격이 강했던 동학군과 농민세력 등 다양하다. 또 조선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성격의 정치세력 뿐만 아니라 조선을 둘러싼 양대 외세라 할 수 있는 청과 일본까지도 대원군을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각기 그 성격을 달리하며 공존할 수 없을 듯한 정치세력 사이에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명분을 위해 대원군을 필요로 했다는 것은 그가 실각한 이후에도 여전히 당시 조선 정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유효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적어도 그가 그만한 정치적 능력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대원군이 조선 말에 등장한 인물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는 비공식적인 형태로 집권하기는 했지만 당시 시대의 요구에 따라 민생의 안정을 도모하며 세도정치 과정을 거치며 특정가문에 치우친 인사를 재편하는 정치적 개혁을 단행하였고, 서구 자본세력에 대항하기도 했다. 이러한 대원군의 정책은 외면적으로는 왕권 강화책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국왕인 고종이 대원군의 집권 기간 동안 강화된 왕권을 행사할 수 없었고, 따라서 고종은 친정을 선포한 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대원군이 마련한 정치적 기반을 부정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대원군 집권기에 국왕이나 왕실의 권위가 강화되긴 했지만 실질적인 왕권이 강화된 것은 아니었다. 모순처럼 느껴지는 이러한 현상은 대원군의 권력 속성이 세도가적인 기반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고종은 대원군을 실권시키고 자신이 실권을 장악하기 위해 자신의 비(妃)인 민씨를 통해 그 척족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자기세력화하여 대원군을 견제했고, 대원군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실권하면서 이들에 대해 원한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대원군은 2번 재집권하게 되지만, 역시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실권하게 된다. 따라서 이 시기 그의 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2차 집권기는 그가 민씨 척족과 직접적으로 대립하여 재기를 노리게 된 사건이었지만, 이들의 요청에 의한 청의 개입으로 그가 정책을 시행하기도 전에 실권하였다. 이러한 경험이 그를 소극적인 성격으로 바꾸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동시에, 민씨 척족에 대한 원한을 더욱 강하게 하고 외세를 자기 배후세력으로 두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3차 집권기에 재집권을 요청한 일본의 요구를 수락하고 명성왕후 민씨의 폐서를 끊임없이 요구한 것도, 그의 생각이 이렇게 변화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3차 집권기의 그에게는 이전에 보였던 정치적인 판단력과 냉정함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민씨가 일본에 의해 시해된 을미사변(1895) 당시에 일본과 함께 입궁하여 고종에게 새로운 내각을 구성할 것을 요구하는 모습에서는 도덕적인 명분을 포기하면서까지 정권 장악을 추구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이 시기의 그에게서 보이는 것은 1차 집권기에 보였던 정치적인 개혁이나 강력한 지도력이 아닌, 단순히 권력에 대한 집념이다.
 따라서 흥선대원군에 대한 평가는 1차 집권기와 그 이후의 모습으로 나누어 볼 수 밖에 없다. 1차 집권기의 그는 왕권의 강화와 안정이라는 명백한 목적 아래에서 개혁을 시행했고 외세의 위협에 맞섰던 것이 분명하다. 전근대사회는 왕실과 국가를 동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그의 생각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지만, 그가 기존 봉건질서를 인정하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확실하다. 이 시기의 그는 봉건질서의 수호를 위해 현실적 사고와 판단을 가지고 과감한 개혁을 단행한 유교적 봉건정치가였다. 하지만 고종과 민씨 척족에 의해 실권한 후에 계속 재집권을 시도하고, 외세에 의해 조선의 정권이 좌우되자 이에 통해 재집권을 시도하는 모습에서 그에게 초기와 같은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청일전쟁을 전후한 시기 그가 상대한 세력이 더이상 민씨 척족이 아니라 외세로 등장하여 조선 정치에 개입하던 일본이었고, 그는 친일개화파의 제거와 동학농민군과의 연계 등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에 일본에 저항하려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면에서는 그가 여전히 반외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는 그의 개인적인 정치적 권력욕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가 조선 왕조를 되살려 조선의 부국강병을 이루려는 초기의 의도가 살아있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3차에 걸쳐 집권과 실권을 반복한 그에 대한 평가는 유교적 보수주의의 틀 안에서 개혁을 시도하려 했다는 초기에 대한 평가는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원군의 정치적 시각이 어디까지나 기존의 정치제도를 유지하는 틀 안에 갇혀있었다는 점에서 그가 추구하는 개혁과 정치적인 실현은 한계성을 지닐 수 밖에 없었고, 기존 세도정치의 구조를 이용한 집권과 개혁은 왕권 강화를 위해 오히려 왕권을 약화시키는 모순을 낳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실권에 대한 이유를 이러한 자신의 오판과 실책보다는 고종과 그 측근 세력인 민씨 척족에게 책임을 돌리고 끊임없이 재집권을 시도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그의 모습에서 그만이 조선 왕실을 구할 수 있다는 일종의 사명감과 자신의 정책과 생각이 옳다는 독선과 아집이 보인다. 결국 흥선대원군은 비록 유교적인 보수주의의 틀 안에서 현실적인 사고와 능력을 가지고 개혁을 추진할 능력과 시각을 갖추었지만, 기존 봉건질서의 유지라는 좁은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여 시대적 요구에 따르는 근본적인 개혁에는 이르지 못한 보수정치가였던 것이다.



p.s.
이번 학기 마지막 리포트 결말부.
아, 학부 마지막 리포트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졸업논문은 어쨌거나 이름은 '논문'이니. --;
아무튼 이거 제출과 동시에 학부 마지막 시험(교양)입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시험공부 못하고 쓰고 있었... __;;)
이전에 흥선대원군 합하와 그 며느리에 대해 적었던 글은 이쪽을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 사람을 죽을 때 잘 죽어야 한다 - 근대사 인물 몇 명의 '결말'

주절주절 거창하게 썼지만, 전 사실 흥선대원군을 꽤 좋아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의 저런 권력욕의 화신 같은 결말이 안타깝습니다.
저 사진 나오던 시절에만 해도 민중의 희망이셨는데 말입니다. -_-;a
(실상은 뭐 별 차이 없었겠지만)


그나저나 어째 쓰다 보니 흥선대원군과 회창옹이랑 참 닮은 것 같습니다.
실권하고도 끊임없이 다시 권력에 도전하는 모습과 그게 갈 수록 점점 추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아, 회창옹보다는 오히려 JP가 더 닮았으려나요.
이 영감님은 좀 이제 남은 여생 편히 지내실 때도 지나지 않았나.
(얼마 전에 깜짝 출연하셔서 MB 지지한다는 말을 하셨던 듯)
MB 쪽이야 뭐, 잘 봐줘야 민씨 척족 쯤일까.
(도덕적 문제 걸리는 점에서...)

덧글

  • Jjoony 2007/12/12 15:12 # 답글

    추한걸로 치면 역시 JP..
    한나라당 입당은 두고두고 코미디로 남을 것 같네요..
  • 유령 2007/12/16 21:28 # 답글

    to 쭈니님
    ......그 영감님은 이제 정말 물러나셔도 될 것 같은데, 계속 뭔가를 기대하면서 얼굴을 내미는 게 좀 그렇더군요. -_-;;
    예상이야 한 일입니다만, 어째 참...-_-;;
  • 바보 2013/06/19 21:59 # 삭제 답글

    국제적인 안목을 갖지 못하고 권력을 갖고자 하며 쇄국정책으로 선진문물을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게끔 했던 오늘날 정치인의 선조.
  • 명성왕후 오래비 2015/09/02 22:07 # 삭제 답글

    일본같이 문호개방하고 내일을 내다보며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이려 노력했어야 하지 않고 정권찬탈하고 현상유지지하려고 쇄국정책으로 나라를 망케 했으니 을사오적보다 못한 놈이다. 지금의 구케의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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